오십을 넘기고 육십에 가까워지면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된다. 예전에는 주말마다 약속이 넘쳤는데, 이제는 전화기를 들어도 마땅히 연락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경조사 소식조차 반가운 만남보다 부고가 더 많아지는 나이다.
이런 변화를 두고 스스로를 탓하거나 성격 탓을 하는 분이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가 줄어드는 데에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알고 나면 지금의 허전함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만남보다 부고가 많아진다

나이가 들면 반가운 소식보다 안타까운 소식이 잦아진다. 한동안 못 보던 지인의 이름을 부고란에서 마주하는 일이 늘고, 결혼식장보다 장례식장에 갈 일이 많아진다.
세월이 흐르는 만큼 곁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거나 건강을 잃고 바깥출입이 어려워진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일수록 그 빈자리는 더 크게 다가온다.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것은 관계를 소홀히 해서가 아니라 세월이 만드는 흐름이다. 그래서 지금 곁에 남아 있는 인연이 더없이 소중해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래 함께 걸어온 귀한 동반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기다.
은퇴하면 관계도 멀어진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는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동료가 있었다. 함께 일하고 밥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쌓이던 관계가 은퇴와 함께 빠르게 옅어진다.
회사라는 공통의 울타리가 사라지면 애써 연락하지 않는 한 만날 일이 없어진다. 처음 몇 번은 안부를 주고받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일상이 달라지면서 대화의 접점도 줄어든다. 일로 맺어진 관계일수록 그 변화가 빠르게 찾아온다.
이는 관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관계를 이어 주던 무대가 바뀐 것이다. 은퇴 후에는 직장 밖에서 새롭게 관계를 이어 갈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세상과의 연결이 한꺼번에 줄어든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건강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마음은 여전히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무릎이 아파 먼 길이 부담스럽고, 지병이 있으면 장거리 나들이 자체가 조심스러워진다.
모임에 나가려면 이동하고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필요하다.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반가운 자리라도 사양하게 되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어느새 부르는 사람도 줄어든다. 몸이 불편할수록 활동 반경이 자연스레 집 근처로 좁아진다.
본인의 건강뿐 아니라 상대의 건강도 만남을 어렵게 만든다. 양쪽 모두 몸이 성해야 얼굴을 볼 수 있으니, 나이가 들수록 만남의 문턱이 높아지는 셈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건강을 지키는 일이 곧 관계를 지키는 일이 되기도 한다.
남은 인연을 지키는 법

인간관계가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남은 인연을 소중히 지킬 수는 있다. 넓게 아는 것보다 깊게 이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나이다.
거창한 모임을 만들 필요는 없다. 오래된 벗에게 가끔 안부 전화를 걸고, 가까이 사는 이웃과 짧게라도 얼굴을 마주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마음이 통하는 몇 사람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넓기만 한 관계보다 훨씬 든든하다.
먼저 다가가는 용기도 필요하다. 상대가 연락해 주기만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안부를 물으면 멀어지던 관계도 다시 이어진다. 새로운 만남에 마음을 열어 두는 것도 좋다. 취미 모임이나 배움의 자리에서 뜻밖의 인연이 생기기도 한다.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정리되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인간관계가 줄어드는 것은 부고가 늘고, 은퇴로 무대가 바뀌고, 건강이 발걸음을 붙잡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삶의 흐름이다.
관계가 줄어든다는 것은 달리 보면 정말 소중한 인연만 곁에 남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많은 이름을 아는 것보다 마음을 나눌 몇 사람이 있는 것이 더 큰 행복일 수 있다. 오늘 문득 떠오르는 그 한 사람에게 먼저 안부를 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