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이 얕아서 말을 아끼지 않는다. 감정을 꺼내지 않는 집에서 자랐거나, 표현했다가 돌아온 반응에 입을 닫았거나, 방법을 배운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사람은 오해를 사기 쉽다. 무뚝뚝하다, 정이 없다, 속을 모르겠다는 평가가 따라붙지만 정작 본인은 그 평가를 가장 억울해하는 위치에 서 있다.
표현의 양과 마음의 크기는 비례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방식이 다를 뿐, 안에서 오가는 감정의 폭은 오히려 더 큰 경우도 확인된다.
감정을 꺼내지 않는 집에서 자랐다

첫 번째 속마음은 자란 환경에 있다. 감정 표현은 타고나는 성격보다 자라면서 보고 배우는 방식에 크게 좌우된다.
집안에서 좋아한다, 서운하다, 힘들다는 말이 오간 적이 거의 없다면 그 말들은 익숙한 언어가 되지 못한다. 대신 참는 쪽이 어른스럽다는 기준만 남는다.
울면 혼나고 화를 내면 버릇없다는 말을 들은 경험도 같은 방향으로 작용한다.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상황이 나빠졌던 기억이 쌓이면 표현 자체가 위험한 행동으로 분류된다.
성인이 된 뒤에도 이 기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감정을 삼키는 일이 배려이자 예의로 학습돼 있어, 참는 자신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상태가 오래 이어진다.
표현했다가 거절당한 기억이 남아 있다

두 번째 속마음은 두려움이다. 표현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한 뒤에 벌어질 일이 무서워 멈추는 경우다.
마음을 꺼냈다가 가볍게 넘겨진 경험, 그걸로 뭐가 그렇게 힘드냐는 대답을 들은 경험이 대표적이다. 이런 반응이 몇 차례 반복되면 표현은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 된다.
특히 좋아한다는 말과 서운하다는 말이 가장 늦게 나온다. 두 말 모두 상대의 반응에 따라 자신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가장 큰 표현으로 꼽힌다.
그래서 말을 아끼는 쪽이 안전해 보인다. 표현하지 않으면 거절도 없다는 계산인데, 대신 마음이 전달되지 않아 관계가 멀어지는 대가가 뒤따른다.
감정에 붙일 이름을 배우지 못했다

세 번째 속마음은 기술의 문제다. 하고 싶은 말은 분명히 있는데 그 마음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히는 상태다.
정신의학에는 이를 가리키는 개념이 있다. 정신신체의학에 실린 논문은 감정표현불능증을 자신의 감정을 판별하지 못하고 감정과 신체 감각을 구별하지 못하며 감정을 교류하지 못하는 특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성향이 강하면 감정이 몸으로 먼저 나온다. 속이 답답하거나 두통이 오는 식으로 신호가 오는데, 정작 그것이 서운함인지 불안인지는 본인도 짚어 내지 못한다.
다만 표현은 성격이 아니라 익힐 수 있는 기술로 본다. 지금 기분이 어떤지 하루 한 문장으로 적어 두는 방식처럼 이름을 붙이는 연습이 훈련의 출발점으로 제시된다.
말 대신 행동으로 대신한다

네 번째 속마음은 나름의 표현 방식이다. 말로 못 하는 대신 다른 통로를 쓰는데, 그 통로가 잘 읽히지 않을 뿐이다.
말없이 우산을 챙겨 두거나, 좋아하는 반찬을 조용히 올려 두거나, 늦은 밤 데리러 나오는 행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본인 기준에서는 충분히 마음을 낸 상태다.
문제는 받는 쪽의 기준이 다르다는 데 있다. 말로 확인받고 싶은 사람에게 행동만 오면 마음이 전해지지 않아 서운함이 남는다.
이런 차이가 쌓이면 양쪽 모두 억울해진다. 한쪽은 이만큼 했는데 왜 모르냐고 생각하고, 다른 쪽은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냐고 여기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표현이 서툰 사람과 지내는 방법은 재촉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왜 말을 안 하느냐고 묻는 순간 상대는 더 깊이 물러서는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지적된다.
대신 답하기 쉬운 형태로 물어보는 방식이 권장된다. 기분이 어떠냐는 열린 질문보다, 오늘 그 말이 서운했는지 묻는 좁은 질문에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표현이 서툰 쪽에서도 완결된 문장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말이 잘 안 나온다는 사실 자체를 알리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오해가 크게 줄어든다.
표현하지 않은 마음은 상대에게 없는 마음과 구분되지 않는다. 그 간극을 좁히는 일은 성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한 문장을 더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