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네 가지 태도가 반복된다. 받은 것을 권리처럼 여기고, 요구의 크기가 점점 커지며, 받은 것은 잊고 못 받은 것만 기억하고, 표현이 사라지는 형태다.
주목할 점은 이런 태도가 대체로 의도 없이 나온다는 데 있다. 상대를 무시하겠다는 결심보다, 반복된 호의에 감각이 무뎌진 결과에 가깝다.
그래서 관계는 큰 다툼 없이 식는다. 준 쪽만 서서히 지치다가 어느 날 연락을 줄이는 방식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호의가 어느새 권리로 바뀐다

첫 번째 태도는 받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처음에는 고마워하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 원래 그래야 하는 일로 자리를 옮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적응 현상으로 설명한다.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반응의 크기가 줄어들기 때문에, 매번 챙겨 주는 사람의 수고는 갈수록 눈에 덜 띈다.
부모의 돌봄, 배우자의 집안일, 동료가 대신 처리해 준 잔업이 대표적이다. 한두 번은 인식되지만 열 번째부터는 배경처럼 흐려진다.
구분되는 지점은 그 일이 멈췄을 때 나온다. 고마움을 아는 쪽은 왜 못 했는지를 먼저 묻고, 모르는 쪽은 왜 안 해 줬는지부터 따진다.
요구의 크기가 조용히 커진다

두 번째 태도는 부탁의 무게가 계속 무거워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부탁으로 시작해 어느새 거절하기 곤란한 요구까지 이른다.
한 번 들어준 부탁이 다음 부탁의 기준선이 되기 때문이다. 거절당한 적이 없는 관계에서는 요청의 상한선이 어디인지 가늠할 기회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주는 쪽의 사정은 계산에서 빠진다. 상대가 야근을 했는지, 돈이 여유가 있는지보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지가 먼저 놓인다.
여기에 거절이 나오면 반응이 갈린다. 서운함을 넘어 배신으로 받아들이며, 그동안 받은 열 번은 언급되지 않은 채 거절한 한 번만 문제로 남는 식이다.
받은 것은 흐려지고 못 받은 것만 선명해진다

세 번째 태도는 기억의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이다. 받은 도움은 뭉뚱그려 사라지고, 받지 못한 순간은 날짜까지 살아남는다.
사람의 기억은 원래 채워진 것보다 비어 있는 것에 더 오래 머문다. 다만 고마움을 모르는 쪽에서는 이 기울기가 특히 크게 나타난다.
그래서 대화가 어긋난다. 준 쪽은 지난 몇 년을 떠올리는데, 받은 쪽은 지난달 부탁을 거절당한 장면 하나로 관계 전체를 평가한다.
주변 사람 이야기에서도 같은 기울기가 드러난다. 누가 자신에게 무엇을 해 주지 않았는지는 길게 말하면서, 누가 무엇을 해 줬는지는 좀처럼 화제에 오르지 않는다.
고맙다는 말 자체가 사라진다

네 번째 태도는 표현의 부재다.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마음이 문장으로 옮겨지는 일이 거의 없다.
감사 표현의 효과는 여러 차례 실험으로 확인돼 왔다. 로버트 에먼스와 마이클 매컬로 연구팀이 성격 및 사회심리학 저널(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발표한 실험에서는 고마운 일을 적은 집단이 불편했던 일을 적은 집단보다 여러 항목에서 더 나은 상태를 보인 것으로 보고됐다.
표현은 받는 쪽에게도 신호가 된다. 심리학자 세라 앨고의 연구는 감사 표현이 상대를 알아보고 관계를 다시 확인해 묶어 주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한다.
반대로 그 신호가 끊기면 주는 쪽은 자신의 수고가 닿았는지 알 길이 없어진다. 표현이 없는 관계에서 호의가 먼저 줄어드는 이유로 풀이된다.
관계가 식는 과정은 대체로 조용하다. 준 쪽이 서운함을 한꺼번에 쏟아내기보다, 연락 간격을 늘리고 부탁을 한 번 거절해 보는 방식으로 물러선다.
이때 받은 쪽은 이유를 모른 채 상대가 변했다고 받아들인다. 정작 그 변화의 앞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마지막까지 계산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돌려세울 방법이 없지는 않다. 고맙다는 말은 늦게 해도 효력이 남고, 무엇이 고마웠는지 구체적으로 짚을수록 상대에게 정확히 닿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는 쪽에게도 정리가 필요하다. 모든 호의가 되돌아오지는 않는 만큼,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정해 두는 편이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