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줄어드는 시기는 대개 삼십 대 이후로 나타난다. 심리학계에서는 이 변화를 관계를 잃는 과정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의미 있는 관계만 남기는 선택의 결과로 설명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로라 카스텐슨 교수가 제시한 사회정서적 선택 이론은 이 흐름을 시간 감각으로 풀이한다. 시간이 무한하다고 느낄 때는 새로운 사람과 정보를 넓게 모으지만, 시간이 한정돼 있다고 느끼면 이미 가까운 사람 쪽으로 힘을 몰아 쓴다는 것이다.
실제 조사에서도 사회적 관계망은 청년기에 가장 커진 뒤 서서히 줄어드는 것으로 보고된다. 줄어드는 대상은 주로 얕게 아는 주변부 관계이고, 가까운 관계의 수는 비교적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 마주치던 자리가 사라진다

친구 관계는 마음보다 접점으로 유지된다. 같은 교실과 같은 사무실처럼 반복해서 마주치는 자리가 있을 때 관계가 저절로 굴러간다는 것이다.
졸업과 이직, 결혼과 육아, 이사가 이어지면 이 접점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사이가 나빠진 것도 아닌데 연락할 계기 자체가 없어지는 셈이다.
여기에 생활 시간표가 어긋나는 문제까지 겹친다. 한쪽이 아이를 재우는 시간에 다른 한쪽은 야근을 하고, 주말도 각자의 가족 일정에 묶인다.
그래서 성인기의 친구 관계는 유지하는 데 따로 품이 든다. 가만히 두어도 이어지던 학창 시절 방식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사람을 고르는 기준이 까다로워진다

나이가 들면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처음 만난 자리가 즐거웠다는 이유만으로 관계를 이어 가지는 않게 된다.
여러 관계를 거치며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어 본 경험이 기준을 만든다. 말을 옮기는 사람, 아쉬울 때만 연락하는 사람, 만나고 나면 기운이 빠지는 사람을 미리 거르게 된다.
카스텐슨 교수 연구진은 이 선택이 감정 경험과 이어진다고 봤다. 주변부 관계가 정리된 쪽일수록 하루 동안 겪는 부정적 감정이 적고 긍정적 감정이 많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는 사람의 수는 줄지만 만나는 사람의 질은 올라간다. 넓게 아는 대신 편한 몇 사람에게 시간을 몰아 쓰는 구조로 바뀐다는 뜻이다.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

관계에는 시간과 감정이 함께 들어간다. 안부를 챙기고 약속을 잡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일 모두 여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중년 이후에는 그 여력이 직장과 가족 쪽으로 대부분 옮겨 간다. 아이와 부모를 동시에 돌보는 시기에는 하루가 남의 일정으로 채워진다.
이때 가장 먼저 밀리는 것이 당장 안 만나도 티가 나지 않는 관계다. 미루다 보면 연락 간격이 벌어지고, 벌어진 간격이 다시 연락을 어색하게 만든다.
체력 문제도 겹친다. 늦게까지 자리를 이어 가던 방식이 힘에 부치면서 만남의 횟수 자체가 줄어드는 것으로 풀이된다.
스스로 관계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줄어든 친구 가운데 일부는 저절로 멀어진 관계가 아니라 본인이 정리한 관계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계산하게 되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비교와 뒷말이 오가는 모임, 다녀오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사이가 먼저 정리 대상이 된다. 예전에는 어색해질까 봐 참았던 자리에서 발을 빼기 시작한다.
정리 방식도 단호한 선언보다 서서히 거리를 두는 쪽에 가깝다. 모임에 나가는 횟수를 줄이고 대화의 깊이를 낮추면서 관계가 옅어진다.
이런 정리를 사회성이 떨어진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관계의 폭을 넓히던 시기에서 남은 관계를 지키는 시기로 목표가 옮겨 간 결과라는 해석이다.
친구가 줄었다는 사실만으로 관계가 실패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연구들이 공통으로 짚는 대목은 관계망의 크기가 아니라 남은 관계의 질이 삶의 만족과 이어진다는 점이다.
다만 줄어드는 흐름을 그대로 두기만 하면 어느 순간 연락할 사람이 남지 않는다. 남기고 싶은 몇 사람에게는 먼저 연락하는 쪽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관계를 끊는 일보다 지키는 일에 품이 더 든다는 것이다.
빈자리를 새로 채우는 방법도 있다. 성인기의 새 친구는 대개 취미와 운동, 지역 모임처럼 반복해서 마주치는 자리에서 생기는 것으로 확인된다. 관계가 줄어드는 과정이 외로움으로 이어져 일상까지 흔든다면 상담 등 도움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