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이슬’, ‘엄마가 딸에게’로 50여 년을 노래해 온 가수 양희은. 그가 데뷔 51년 차에 펴낸 에세이의 제목은 ‘그러라 그래’였다.
누군가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얹을 때, 그는 굳이 맞서지 않고 “그러라 그래” 한마디로 넘긴다고 했다. 짧고 무심해 보이는 이 말에, 의외로 많은 사람이 위로를 받았다.
남의 시선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라면, 이 한마디가 더없이 부럽게 들린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가볍게 넘길 수 있을까. 그 비결을 한 번 들여다봤다.
“그러라 그래” 안에 담긴 진짜 뜻

“그러라 그래”는 ‘그렇게 생각하라고 그래’라는 뜻이다. 그 뒤에는 ‘나는 상관없어’라는 단단한 마음이 숨어 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무슨 말을 하든 거기에 일일이 흔들리지 않겠다는 태도다. 미워하거나 따지는 게 아니라, 그저 가볍게 흘려보내는 여유에 가깝다.
오랜 세월 온갖 말을 겪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이다. 그래서 이 한마디에는 억지로 꾸민 쿨함이 아니라, 진짜로 내려놓은 사람의 편안함이 묻어난다.
우리는 왜 남의 말에 휘둘릴까

많은 사람이 타인의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마음을 졸인다.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그 사소한 평가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문제는 남의 입은 내가 어쩔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잘해도 누군가는 말을 얹고, 내가 신경 쓴다고 그 말이 멈추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러라 그래”는 포기가 아니라 분별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남의 생각은 그쪽에 맡겨 두고, 내 마음만은 지키겠다는 현명한 선 긋기인 셈이다.
“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양희은은 우여곡절 많은 삶을 살았다. 한때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가 이겨 냈고, 오랜 세월 무대와 마이크 앞을 지켜 왔다.
그런 그가 인생을 정리하며 꺼낸 말이 “다 괜찮아. 그러라 그래. 그럴 수 있어”였다. 지나고 보니 모든 일이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는, 깊은 받아들임이다.
“그럴 수 있어”는 나를 향한 말이기도 하다. 실수한 나에게도, 부족한 나에게도 그럴 수 있다고 말해 주면, 자신을 몰아세우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큰 고비를 넘겨 본 사람은 안다. 당장은 무너질 것 같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그럴 수 있는’ 일이 된다는 것을. 그 경험이 쌓여 “그러라 그래” 같은 여유가 만들어진다.
좋아하는 걸 하고, 나답게 살면 그만

그의 철학은 단순하다. 좋아하는 걸 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나답게 살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남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 애쓰는 대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집중하는 삶이다. 그 중심이 단단할수록, 바깥의 말은 점점 힘을 잃는다.
결국 “그러라 그래”는 무관심이 아니라,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겠다는 선언이다.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내 마음이 기준이 되는 순간, 삶은 한결 자유로워진다.
오늘 한 번, “그러라 그래” 해보면

누군가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려 잠 못 드는 밤이 있다. 그럴 때 양희은의 이 한마디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라고 두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할 일을 하면 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물론 하루아침에 남의 말이 아무렇지 않아지지는 않는다. 다만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 말을 되뇌다 보면, 휘둘리는 시간이 조금씩 짧아진다.
그러라 그래. 그럴 수 있어. 다 괜찮아. 평생을 노래해 온 사람이 건넨 이 가벼운 한마디가, 오늘 무겁던 마음을 한결 놓이게 해줄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