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잘되는 것 하나만 보고 평생을 달려온 부모가 적지 않다. 좋은 옷 한 벌 아끼고, 하고 싶은 것 다 미뤄 가며 자식 뒷바라지에 인생을 쏟아부은 세월이다.
그런데 자식을 다 키워 내보내고 한숨 돌릴 즈음, 마음 한켠에 알 수 없는 허전함과 후회가 밀려온다. 자식을 원망해서가 아니다. 그저 나를 너무 오래 뒷전에 두었다는 뒤늦은 깨달음일 뿐이다. 자식 뒷바라지에 인생을 바친 부모가 뒤늦게 후회하는 것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나를 위한 것은 늘 뒷전이었다

많은 부모가 자식 앞에서는 늘 자신을 가장 나중에 두었다.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사고 싶은 것도 미루며 그 몫을 고스란히 자식에게로 돌렸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사랑이라 여겼다. 부모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믿었고, 나를 챙기는 일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식이 잘 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보면, 정작 나를 위해 쓴 시간이 너무 적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식을 사랑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랑 속에서 나 자신을 조금 더 아껴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다.
빈손이 된 것 같은 노후

가진 것을 자식에게 다 내어 주고 나면, 정작 노후를 맞은 자신의 손에는 남은 것이 많지 않다고 느끼는 부모가 있다. 자식 공부시키고 결혼시키느라 모아 둔 것을 다 쓴 뒤의 허전함이다.
물론 자식이 잘 자란 것이 무엇보다 큰 재산이다. 그러나 막상 몸이 예전 같지 않고 벌이가 줄어드는 시기가 오면, 준비 없이 맞은 노후가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럴 때일수록 자책하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챙기는 편이 낫다. 작더라도 나를 위한 몫을 조금씩 남겨 두는 습관, 건강을 먼저 돌보는 마음이 남은 날들을 지켜 준다. 늦었다고 여겨질 때가 사실은 다시 시작하기에 가장 이른 때다.
어느새 나를 잃어버렸다

오랜 세월 부모라는 이름으로만 살다 보면, 정작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흐릿해지곤 한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빠로는 익숙해도, 그냥 나로서 무엇을 좋아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젊은 날 좋아하던 것들, 해 보고 싶던 일들은 자식을 키우는 사이 자연스레 뒤로 밀려났다. 그렇게 나를 위한 자리를 조금씩 비워 온 것이다.
자식이 곁을 떠난 뒤 찾아오는 허전함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는 일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은 인생을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늦었더라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다시 물어볼 때다.
지금이라도 나를 위해 살아도 된다

가장 큰 후회는 어쩌면 나를 위한 삶을 너무 오래 미뤄 왔다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후회 앞에서 자책만 하기에는 남은 날들이 아직 길다.
자식은 이미 자기 삶을 살아갈 만큼 자랐다. 이제는 그 손을 놓아 주고, 미뤄 두었던 나의 시간을 되찾아도 되는 때다. 배우고 싶던 것, 가 보고 싶던 곳, 만나고 싶던 사람을 다시 떠올려 보면 된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오늘 하루 나를 위한 작은 즐거움 하나를 챙기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아침 산책 한 번, 배우고 싶던 것 하나면 충분하다. 지금까지 자식을 위해 살았다면, 앞으로의 시간만큼은 나를 위해 써도 충분히 괜찮다.
이제는 나를 돌볼 차례다
나를 뒷전에 둔 세월, 빈손이 된 듯한 노후, 잃어버린 나 자신까지, 자식 뒷바라지에 인생을 바친 부모의 후회는 결국 나를 너무 오래 아끼지 못한 데서 온다.
그러나 그 후회는 남은 인생을 다시 세우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자식을 잘 키워 세상으로 내보낸 것은 부모로서 해낸 큰일이니, 이제는 그 수고한 자신을 돌볼 차례다. 늦었다고 여겨질 때가 사실은 가장 이른 때다. 오늘부터 나를 위한 작은 한 걸음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