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의 지성’으로 불린 이어령 선생은 암 선고를 받은 뒤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않고, 죽음을 마주하며 글을 쓰고 인터뷰를 남겼다. 그가 삶의 마지막 무렵 거듭 말한 한마디가 많은 이들의 마음에 깊이 남았다. “내 삶은 다 빌린 것, 선물이었다”는 고백이다. 평생 누구보다 많은 것을 이룬 그가 왜 이런 말을 남겼는지 살펴봤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자유로워지는 줄 알았던 통념을, 그의 마지막 말이 조용히 뒤집는다.
“내 삶은 다 빌린 선물이었다”

이어령 선생은 마지막 시간 동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처음부터 자기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내 목숨은 빌린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 선물이었다고 고백했다. 평생 자기 노력으로 일군 것이라 여겼던 모든 것이, 사실은 잠시 빌려 쓴 것이자 거저 받은 선물이었다는 깨달음이다.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도달한 결론이 ‘소유’가 아니라 ‘선물’이었다는 점이 깊은 울림을 준다. 내 것이라는 생각이 강할수록 잃는 두려움도 커진다는 것을, 그는 일찍이 꿰뚫어 보았다. 평생 무언가를 채우며 살아온 그가, 마지막엔 모든 것을 내려놓는 법을 이야기한 셈이다.
‘내 것’이 아니라 ‘빌린 것’이라면

삶을 내 소유라고 여기면, 우리는 그것을 잃을까 늘 불안하고 더 가지려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잠시 빌린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전혀 달라진다.
빌린 것은 언젠가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기에, 집착 대신 감사가 자리 잡는다. 내 것이라 여기면 떠나보낼 때 억울하지만, 선물이라 여기면 받은 것에 고마워하게 된다. 같은 삶을 살아도 ‘내 것’으로 보느냐 ‘선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삶의 무게와 빛깔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감사는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서 나온다. 같은 것을 가지고도 누군가는 불평하고 누군가는 감사하는 이유다. 빌린 것이라는 마음은 우리를 더 너그럽고 가볍게 만든다.
죽음마저 끝이 아니라 본 지성

이어령 선생은 죽음에 대해서도 남다른 시선을 보여 주었다. 그는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지 않느냐, 그건 탄생의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죽음을 어둠의 골짜기나 세계의 끝이 아니라, 처음 왔던 자리로 돌아가는 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의식이 또렷할 때 세상을 떠나고 싶다며 진통제까지 줄였고, 마지막까지 죽음을 관찰하고 글로 남겼다. 끝까지 배우고 사유하기를 멈추지 않은 그의 태도는,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한 지성의 품격을 보여 주었다. 그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끝까지 사유할 또 하나의 주제였다. 삶을 선물로 받아들인 사람은, 그 마지막마저 담담히 맞을 수 있는 듯하다.
빌린 것을 잘 쓰고, 감사히 돌려주는 삶
이어령 선생이 남긴 메시지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잠시 맡아 둔 선물이라는 깨달음이다. 생명도, 시간도, 사랑하는 사람도 영원히 내 것이 아니라 잠시 함께하는 선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 하루가,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새삼 느껴진다. 빌린 것이기에 더 소중히 쓰고, 떠날 때 감사히 돌려주는 것. 그것이 한 시대의 지성이 삶의 끝에서 우리에게 건넨 가장 따뜻한 가르침이다. 오늘 곁에 있는 사람과 보내는 평범한 하루도, 사실은 잠시 빌린 귀한 선물이다.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우리는 그 소중함을 잊는다. 오늘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큰 선물인지 한 번쯤 돌아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