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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박사가 “절대 때리지 마라”며 훈육을 두고 단호히 경고한 이유

훈육과 체벌을 혼동하는 부모들에게 오은영 박사가 일관되게 강조해 온 말이 있다. 진짜 훈육이 무엇인지 그 이유를 짚었다.
훈육 표지

아이를 키우다 보면 “버릇을 고치려면 한 번쯤 따끔하게 혼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오은영 박사는 오랫동안 한 가지를 분명하게 강조해 왔다. 훈육은 아이를 혼내고 때려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르쳐 주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체벌이 점점 사라지는 시대에도, 여전히 많은 부모가 이 경계 앞에서 흔들린다.

“때리는 건 훈육이 아닙니다”

때리는 건 훈육이 아니다

오 박사가 줄곧 주장해 온 핵심은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것이다. 체벌은 그 순간 아이의 행동을 멈추게 할 수는 있어도, 옳고 그름을 가르쳐 주지는 못한다.

맞은 아이는 ‘왜 이 행동이 잘못인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들키면 맞는다’, ‘힘센 사람이 이긴다’를 배운다. 두려움 때문에 잠시 멈출 뿐, 진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훈육의 목적이 아이를 더 나은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라면, 때리는 방식은 그 목적에서 가장 멀리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체벌이 반복될수록 부모도 점점 더 강한 자극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처음엔 한 번이던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기 쉽다. 맞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도 화가 나면 폭력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진짜 훈육은 ‘가르치는 것’이다

진짜 훈육은 가르치는 것

그렇다면 진짜 훈육은 무엇일까. 오 박사가 말하는 훈육은 ‘옳고 그름을 차분히 가르쳐 주는 것’이다. 화를 쏟아 내는 것이 아니라, 안 되는 행동에 대해 분명하고 일관된 기준을 알려 주는 일이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감정적으로 소리를 지르기보다, 차분한 목소리로 “이건 안 되는 거야”라고 알려 주는 것이다. 부모가 흥분하면 아이는 부모의 화에 압도될 뿐, 정작 무엇이 잘못인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단호하되 차분한 태도가 훈육의 핵심인 이유다. 감정이 가라앉은 뒤에 가르쳐야, 그 가르침이 아이에게 제대로 가닿는다. 결국 훈육의 목소리는 크기가 아니라 일관성에서 힘이 나온다.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일관된 기준

안 되는 건 안 된다

오 박사는 부모가 아이에게 분명한 한계를 설정해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와 친근하게 지내는 것과, 부모로서 기준을 세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아빠가 아이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좋지만, 친구가 되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부모는 아이의 부적절한 행동에 한계를 정해 주고, 안 되는 것은 분명히 안 된다고 말해 줘야 한다. 어제는 봐주고 오늘은 혼내는 식의 들쭉날쭉한 태도가 아니라, 일관된 기준이 아이에게 안정감을 준다. 기준이 분명한 집에서 자란 아이가 오히려 더 편안해하는 이유다. 한계는 아이를 가두는 울타리가 아니라, 아이를 지켜 주는 안전한 테두리다. 무엇이든 다 허용되는 환경이 오히려 아이를 불안하게 만든다.

훈육과 사랑은 함께 간다

결국 오은영 박사가 전하려는 것은, 훈육이 사랑의 반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진짜 훈육은 아이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세상에서 잘 살아가도록 옳고 그름을 가르쳐 주려는 사랑에서 나온다. 때리거나 윽박지르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기준을 세우는 것, 그것이 가장 어렵지만 가장 효과적인 훈육이다. 화가 날 때는 잠시 멈추고, 차분해진 뒤에 가르치는 것이 좋다. 부모의 단호함 속에 따뜻함이 함께 있을 때, 아이는 비로소 안전하다고 느끼며 옳은 길을 배워 간다. 오늘 욱하는 손 대신 차분한 말 한마디를 건네 보는 것, 거기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때리지 않고도 충분히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오 박사가 오래도록 전해 온 메시지다. 그 믿음 하나가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천천히 바꿔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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