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도무지 미운 사람이 생긴다.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답답해지고, 잊으려 애쓸수록 오히려 그 얼굴이 더 또렷하게 떠오른다. 미움은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법륜스님은 미움을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로 바라본다. 미운 감정을 억지로 없애려 하기보다 그 마음이 어디서 오는지를 들여다볼 때, 비로소 미움에서 조금씩 놓여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움에서 벗어나는 법을 하나씩 살펴본다.
미워하는 마음은 결국 나를 괴롭힌다

누군가를 미워할 때 가장 오래, 가장 깊이 괴로운 사람은 미움을 받는 상대가 아니라 미워하는 나 자신이다. 정작 상대는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는데, 나만 그 사람을 떠올리며 밤잠을 설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움은 마음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며 나를 먼저 태운다. 상대를 향해 던진 감정이 정작 내 속을 뜨겁게 데우고, 그 열기 속에서 지치는 것은 결국 나다. 법륜스님이 미움을 두고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미움을 다루는 첫걸음은 상대를 어떻게 할지가 아니라, 이 감정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하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 있다. 미워할수록 손해 보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 마음을 붙들고 있을 이유가 조금씩 줄어든다.
상대를 억지로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미움에서 벗어나려면 상대를 반드시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억지로 이해하려 애쓰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상대를 두고 다시 나를 탓하게 되어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법륜스님은 상대를 억지로 좋게 보려 애쓰기보다,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세상 모든 사람을 다 이해할 수도 없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되지 않는 대로 그냥 두어도 괜찮다. 상대를 바꾸거나 완벽하게 받아들이려는 부담을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 매여 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해는 미움을 푸는 조건이 아니라, 마음이 편해진 뒤에 저절로 따라오는 결과에 가깝다.
미움도 일종의 집착이다

미움은 언뜻 상대를 밀어내는 감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사람을 끊임없이 마음에 붙들고 있는 상태다. 좋아서 놓지 못하는 것이나 미워서 놓지 못하는 것이나, 특정한 사람에게 마음이 강하게 매여 있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법륜스님은 이런 미움을 일종의 집착으로 본다. 그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해야 했다, 저러면 안 됐다는 기대와 원망이 마음에 남아, 이미 지난 일을 계속 붙들고 곱씹게 만드는 것이다. 붙들고 있는 한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미움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상대를 억지로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걸어 두었던 기대와 집착을 푸는 일에 가깝다. 그 사람이 내 마음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놓는 순간, 붙들려 있던 감정도 조금씩 힘을 잃는다.
때로는 거리를 두는 것이 답이다

미운 사람과 억지로 잘 지내려 애쓰는 것이 늘 정답은 아니다. 가까이 있으면 자꾸 부딪히고 감정이 상하는 관계라면, 무리해서 붙어 있기보다 적당히 거리를 두는 편이 서로에게 낫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상대를 미워하며 등을 돌리는 것과는 다르다. 애써 마주 서서 갈등을 키우는 대신, 잠시 물러나 내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지키는 지혜에 가깝다. 법륜스님이 말하는 거리 두기도 이런 담담한 물러섬이다.
모든 관계를 다 끌어안아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으면 한결 편해진다. 억지로 가까워지려 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 거리를 두면, 부딪힐 일이 줄어들면서 미움이 커질 자리도 자연스럽게 좁아진다.
미움을 내려놓으면 내 마음이 편해진다
미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미운 사람을 억지로 잊거나 좋아하려 애쓰는 데 있지 않다. 그 감정이 결국 나를 괴롭힌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걸어 둔 기대와 집착을 조금씩 풀어 가는 데 있다.
미움을 내려놓아서 정작 편안해지는 사람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오늘 마음속에 걸려 있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면, 그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보다 그 사람에게 매여 있던 내 마음부터 슬며시 내려놓아 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