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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살아계실 때 하지 못해 뒤늦게 후회하는 일 네 가지

부모님이 곁에 계실 때는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이, 떠나보낸 뒤에야 후회로 남는다. 자식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부모님 관련 후회 네 가지를 짚었다.

부모님을 향한 후회는 대부분 사소한 일상에서 비롯된다. 자주 찾아뵙지 못한 시간, 무심코 낸 짜증, 끝내 전하지 못한 고마움, 귀 기울이지 못한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살아계실 때는 잘 보이지 않다가 이별 앞에서야 선명해지는 감정들이다.

자주 찾아뵙지 못한 시간

명절에만 부모님을 찾아뵙는 자녀

부모를 떠나보낸 뒤 가장 흔하게 남는 후회는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명절이나 생신에만 얼굴을 비추다, 어느 순간 그 기회마저 사라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많다.

“다음에 시간 나면 가자”는 말은 자연스럽게 미뤄진다. 회사 일이 바쁘고, 아이들 학원 일정이 겹치고, 주말에는 몸이 쉬고 싶어진다. 그렇게 한 주가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한 계절로 늘어난다. 그러나 부모의 시간은 자식의 예상보다 빠르게 흐른다.

부모가 앞으로 맞이할 명절이 몇 번 남지 않았다는 계산 앞에서, 미뤄 둔 방문은 되돌릴 수 없는 아쉬움으로 바뀐다.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일수록 이 후회는 더 크게 남는 것으로 알려진다.

거창한 효도보다 짧더라도 잦은 연락과 방문이 부모에게는 더 큰 의미로 남는다. 한 달에 한 번 얼굴을 마주하거나, 며칠에 한 번 안부 전화를 거는 습관이 훗날 후회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무심코 낸 짜증과 퉁명스러운 말투

편한 사이라 부모님께 짜증 내는 자녀

두 번째 후회는 부모에게 무심코 낸 짜증이다. 정작 가장 편한 상대이기에, 밖에서라면 하지 않았을 날 선 말투를 부모 앞에서 쉽게 드러낸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노부모에게 “몇 번을 말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거나, 서툰 스마트폰 조작에 한숨부터 내쉰 기억은 이별 뒤 오래 남는다. 걱정에서 나온 잔소리를 잔소리로 되받아친 순간, 반찬 하나 더 챙겨 주려는 손길을 귀찮아한 순간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서운함을 삼키고 넘겼겠지만, 그 장면은 자식의 마음에 죄책감으로 되돌아온다. 정작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떠오르는 것은 함께한 좋은 기억보다, 무심코 상처를 준 그 짧은 순간들인 경우가 많다.

짜증의 대상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저 지쳐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모도 안다. 다만 그 사실이 후회를 덜어 주지는 못한다. 표정 한 번, 말 한마디를 누그러뜨리는 일이 결국 가장 큰 효도였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끝내 전하지 못한 고맙다는 말

고맙다는 말을 끝내 전하지 못한 자녀

세 번째는 고맙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끝내 전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의 부모 자식 사이에서 이런 표현은 여전히 쑥스럽게 여겨지곤 한다.

마음속으로는 늘 감사했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기는 어색해 미뤄 둔다. 무뚝뚝한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던 세대일수록 애정 표현은 더 서툴다. 그러다 부모가 기력을 잃거나 세상을 떠난 뒤에야, 말할 기회 자체가 사라졌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표현하지 않은 마음은 상대에게 온전히 닿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의 고마움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는 있어도, 직접 귀로 들은 “고맙습니다”와 “사랑합니다”의 무게는 다르다.

전하지 못한 말은 남은 사람의 몫으로 오래 맴돈다. 장례식장에서 영정을 마주하고서야 하고 싶은 말이 쏟아지지만, 그때는 이미 들어 줄 사람이 없다. 사랑한다는 말은 늦기 전에 건네야 후회로 남지 않는다.

귀 기울여 듣지 못한 이야기

부모님의 옛이야기를 흘려듣는 자녀

마지막 후회는 부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한 것이다. 옛날 이야기나 지난 세월의 회상을 “또 그 얘기”라며 흘려보낸 순간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부모가 반복해 꺼내는 이야기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자식에게 남기고 싶은 마음이 담긴 경우가 많다. 젊은 시절 고생담이나 옛 동네 이야기는 지루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 안에는 가족의 뿌리와 부모의 진심이 녹아 있다.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준 기억은 자식에게도 부모를 이해하는 소중한 기록으로 남는다. 반대로 대화를 끊고 휴대전화로 눈을 돌린 순간들은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이별 뒤에는 더 이상 물어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부모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을 자랑스러워했는지 미처 묻지 못한 것이 뒤늦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살아계실 때 나눈 대화만이 온전히 자식의 몫으로 남는 셈이다.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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