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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육아 하다 서운해지는 순간

손주가 예쁜 마음과 서운한 마음은 함께 온다. 황혼육아를 하는 조부모라면 누구나 겪는 그 서운한 순간들을 하나씩 짚어 본다.

손주를 품에 안는 순간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렵다. 그런데 그 예쁜 마음 한편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슬며시 밀려오는 서운함이 자리 잡기도 한다.

손주가 미워서가 아니다. 온 마음을 다해 돌보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서운한 순간을 더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그만큼 정성을 쏟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그 마음을 혼자 삭이다 보면 몸도 마음도 지쳐 버리기 쉽다. 황혼육아를 하다 문득 마음이 내려앉는 순간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을 때

체력 소진

아이를 안고 어르고 하루 종일 뒤를 쫓다 보면, 저녁 무렵에는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다. 젊을 때는 거뜬하던 일이 이제는 허리와 무릎에 고스란히 부담으로 남는다.

기운이 달려 잠깐 앉아 쉬는 자신을 보며, 예전 같지 않은 몸이 새삼 서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손주는 여전히 힘이 넘치는데 나만 자꾸 뒤처지는 듯한 기분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하지만 이 피로는 게을러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몸을 아끼지 않고 사랑을 쏟았다는 흔적이다. 힘들 때는 힘들다고 말하고, 잠깐이라도 몸을 쉬게 해 주는 것이 오래 아이 곁을 지키는 길이다. 무리해서 몸을 상하면 정작 필요한 순간에 손주를 안아 줄 수 없다.

도와주는 게 당연해질 때

당연하게 여겨짐

처음에는 미안해하며 부탁하던 자식들이,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맡기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약속이라도 잡은 듯 아이를 데려다 놓고, 늦는다는 연락 한 통이면 그만인 날도 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여전한데, 내 하루가 통째로 남의 일정에 매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고마움을 잊은 그 태연함 앞에서 마음이 문득 서늘해진다.

이럴 때는 서운함을 속으로만 삭이기보다, 언제까지 어느 정도 도울 수 있는지 미리 이야기해 두는 편이 낫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끝까지 모른다. 당연함이 자리 잡기 전에 서로의 사정을 나누는 것이 관계를 오래 지키는 방법이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없을 때

고마움 표현 없음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하루가 저물도록 “고생하셨어요” 한마디 듣지 못하는 날이면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진다. 대가를 바란 것이 아니어도, 알아주는 말 한마디는 사람을 힘나게 한다.

내가 쏟은 정성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 서운함은 생각보다 깊게 남는다. 특히 몸까지 지친 날이면 그 작은 말의 부재가 더 크게 다가온다.

자식들이 고마움을 몰라서가 아니라, 바쁜 일상에 표현을 잊었을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는 마음을 닫아 두기보다, 서운한 마음을 담담하게 전해 보는 것이 좋다. 표현은 표현을 부르고, 그렇게 서로의 수고를 알아주는 사이가 된다.

내 삶이 사라진 것 같을 때

내 삶이 사라짐

손주를 돌보는 사이, 친구와의 약속도 취미도 하나둘 뒤로 밀려난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내 하루에 나를 위한 시간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이는 사랑스럽지만, 내 이름 대신 누군가의 할머니 할아버지로만 불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작 나 자신은 희미해지는 듯한 서글픔이 찾아온다.

이 마음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남겨 두어야, 아이를 돌보는 마음도 지치지 않고 오래간다. 일주일에 한나절만이라도 나를 위한 여백을 지키는 것이 결국 손주에게도 좋은 일이다.

서운함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고, 도움이 당연해지고, 고맙다는 말이 없고, 내 삶이 사라진 것 같은 순간까지, 황혼육아의 서운함은 결국 그만큼 깊이 사랑했기에 찾아오는 마음이다.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정성을 다한 사람만이 느끼는 감정이다. 다만 그 마음을 속으로만 눌러 담지 말고, 힘든 것은 힘들다고 말하며 나를 위한 자리도 조금씩 지켜 가면 좋겠다. 서운함을 솔직하게 나누는 것이 오히려 자식과의 사이를 더 편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해야 손주를 향한 사랑도, 그 사랑을 쏟는 나 자신도 오래도록 따뜻하게 지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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