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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며 나도 모르게 꼰대가 되는 신호

꼰대는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그렇게 변하고 있다는 걸 가장 늦게 아는 사람이다. 나이 들며 나도 모르게 꼰대가 되는 신호를 정리했다.

누구나 젊을 때는 “나는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보면, 정작 그 소리를 듣는 쪽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뜨끔할 때가 있다.

꼰대라는 말이 억울하게 들릴 수도 있다. 나름대로 아끼는 마음에서 한 말인데 왜 그렇게 받아들일까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마음이 아니라 태도에서 드러난다. 나이 들며 나도 모르게 꼰대가 되는 신호를 하나씩 짚어 본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꾸 가르치려 든다

자꾸 가르치려 듦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대가 조언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답을 내놓으려는 순간이 있다. “그건 이렇게 해야지” 하는 말이 입 밖으로 먼저 나오는 것이다.

가르치려는 마음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상대는 지금 하소연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듣는 사람이 곧장 선생님으로 변하면 대화는 거기서 끊긴다. 위로받고 싶어 꺼낸 이야기가 훈계로 돌아오면 다음부터는 입을 닫게 된다.

정말 필요한 조언이라면 상대가 먼저 물어올 때 해도 늦지 않다. 묻기 전에는 답을 아끼고, 대신 “그래서 어떻게 됐어?” 하고 한 번 더 들어 주는 편이 낫다. 가르치는 사람보다 들어 주는 사람 곁에 사람이 모인다.

옛날 기준을 지금에 그대로 들이댄다

옛날 기준 강요

“내가 젊을 때는 이 정도는 참고 다녔다”는 말은 은근히 자주 나온다. 자신이 겪어 온 방식이 옳다고 믿기에, 지금 세대의 사정도 그 잣대로 재려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면 살아가는 방식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일이 지금은 그렇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내 경험이 소중한 만큼 상대의 현실도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대화가 통한다.

경험은 강요할 때가 아니라 청할 때 빛난다. “요즘은 어떻게들 하나?” 하고 먼저 물어보면, 오히려 상대가 이쪽의 옛이야기를 궁금해하기도 한다. 기준을 들이대는 대신 서로의 시절을 나누면 세대 차이는 벽이 아니라 이야깃거리가 된다.

남의 말은 끝까지 듣지 않는다

남 말 안 들음

나이가 들수록 아는 것이 많아지다 보니, 상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결론을 짐작하게 된다. 그래서 “아, 그거 알아” 하며 말을 끊는 일이 잦아진다.

말을 끊는 습관은 상대에게 “당신 이야기는 더 들을 필요 없다”는 신호로 전해진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하더라도, 끝까지 듣지 않는 사람 앞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쏙 들어가기 마련이다.

듣는 힘은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늘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하지 않으면 점점 줄어든다. 상대가 말을 마칠 때까지 한 박자 기다려 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존중받았다고 느낀다. 잘 듣는 어른이 결국 말이 통하는 어른이다.

젊은 사람을 은근히 낮춰 본다

젊은 사람 존중 안 함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다”는 식의 말은 무심코 튀어나오기 쉽다. 나이가 곧 서열이라고 여기다 보면, 젊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한 수 아래로 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는 존중을 요구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존중은 세월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어리다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정작 자신이 나이만큼 대접받지 못하는 이유를 끝내 알지 못한다.

젊은 사람을 동등한 상대로 대하는 어른은 어디서나 환영받는다. 나이를 앞세우지 않아도 그 여유와 태도만으로 저절로 존중이 따라온다. 대접받고 싶다면 먼저 상대를 한 사람으로 대접하는 것이 순서다.

꼰대와 어른을 가르는 것

묻지도 않았는데 가르치려 들고, 옛날 기준을 들이대고, 남의 말을 끊고, 젊은 사람을 낮춰 보는 것까지, 나이 들며 나도 모르게 꼰대가 되는 신호는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내 생각만 옳다고 믿는 마음이다.

꼰대와 어른의 차이는 나이가 아니라 태도에 있다. 여전히 배우려 하고, 끝까지 들어 주고, 다름을 인정하는 사람은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꼰대가 되지 않는다. 오늘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답을 먼저 내놓기보다 한 번 더 들어 주는 연습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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